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주식회사’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주식회사란 무엇일까요?

주식회사는 '사업과 자본을 연결하는 고도의 신뢰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창업가는 사업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한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책임감 있게 회사를 운영해 가야 하고 사업의 운영에 있어서 투자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죠.

따라서 사업에 필요한 자금 유치 측면에서 투자를 받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투자를 받는 것은 상당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투자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하나, 투자를 받으면 이제 이 사업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투자계약에서는 투자자들에게 회사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하여 사전에 동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고, 한국 투자계약에서는 특히 개별 투자자별로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투자자들이 개별적으로 동의권을 가집니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개별적으로 거부권을 갖게 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투자자들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지고, 하나의 투자자라도 반대하면 의사결정이 어려워집니다.

둘, 투자 유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특히 우리 투자계약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투자자가 회사뿐만 아니라 대표자에게도 투자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투자자의 사후관리와 거버넌스, 해답은?

사업과 자본을 연결하는 고도의 신뢰 시스템인 주식회사를 만들어 가는 길에서 책임감 있게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존중하면서도, 개별적 투자자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회사의 사업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는 좋은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업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만큼 위험도 함께 나누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우리보다는 조금 더 먼저 그 역사를 만들어 간 실리콘밸리의 투자생태계를 통하여 그 대안을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그 대안을 대표적인 크로스보더 투자사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의 김범수 파트너님과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김범수 파트너는?

김범수 파트너는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에서 한미 양국 B2B SaaS, AI(ML), Digital Healthcare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2000년 국내 KTB network에서 VC 투자에 입문한 김 파트너는 2003년 실리콘밸리의 KTB Ventures로 옮겨 여러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IPO나 M&A를 통해 성공적으로 회수했고 2009년 온라인 교육 스타트업을 설립, 6년간 경영하면서 창업자로서 실리콘밸리를 경험했습니다. 2017년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에 합류, 창업자로서의 경험을 활용하여 유망한 한미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튜브 채널 'Demo Day'를 통해 실리콘밸리 생태계와 스타트업 창업, 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거버넌스 구조 차이 

한국은 회사의 중요 사안에 대해 투자자 각각이 동의권(veto rights에 해당)을 갖는 개별 계약 구조인 데 반해 미국은 같은 라운드(series A, B 등)에 참여한 투자자 모두가 한 개의 동일한 계약서에 서명하고 주요 주주 의결 사항에 대해 class voting을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series A 투자자 70%의 동의가 있으면 승인된 것으로 한다’는 식으로 투자자 간 의사결정 방식이 사전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판돈을 많이 건 사람이 voice가 더 커지게 되고 리드 투자자(lead investor)가 될 이유가 생깁니다.

한국은 한 투자사라도 반대하면 NO
반면, 한국 투자계약에서 한국 투자자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동의권을 갖습니다. 즉, 100억 펀딩 라운드에서 80억을 투자한 투자자들이 동의해도 만장일치가 아니라면 계약 위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투자한 VC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class voting으로 의사결정 하는 편이 더 빠른 의사결정을 돕는다는 면에서 결과적으로 회사와 투자자에 이익이라는 사고인 거죠. 소액 투자하는 투자자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투자하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미국 투자계약은 기존 투자자가 계속 투자할 수 있는 권리(pro-rata rights)를 부여해서 회사가 잘 나갈 때 누군가 ‘이번 라운드 전액 투자할게’라고 해도 이미 투자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해 줍니다. 잘될 때의 ‘upside를 보장하는’ 사고방식이죠.

미국은 다운라운드에서 기존 투자자 지분 증가 NO

반대로 다운라운드(이전 펀딩보다 낮은 밸류에 투자받는 것)가 생길 경우 국내처럼 ‘투자 당시보다 사업이 잘 안돼서 기업가치가 내려갔으니 우리 투자단가도 이번 다운라운드 가격으로 전환해달라’는 리픽싱 조항은 없습니다. 다운라운드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투자자 지분도 늘어나는 리픽싱은 새로 들어오는 투자자로 하여금 ‘자기들이 잘못 판단한 건데 왜 내가 그들 지분까지 늘려줘야 해?’처럼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펀딩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존 투자자의 Downside risk를 피하도록 보장하는 방식(국내의 리픽싱)이 큰 틀에서는 회사의 성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죠. 회사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낮은 밸류에 더 투자해서 지분을 높이면 되고, 아니라면 회사의 가능성을 믿는 투자자가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는 방식인 거죠.

미국은 Pay to play 방식도 존재
극심한 다운라운드에서는 pay to play라는 방식, 추가 투자하지 않는 기존 투자자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서 우선권을 잃는 방식의 펀딩도 종종 나타납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권리를 잃는 게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만 권리를 계속 보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Redemption Rights, 흔하지는 않아
미국 투자계약서에도 제가 처음 실리콘밸리에 왔던 21년 전에는 Redemption rights* 조항이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국내의 상환권과는 다른 개념으로 회사에 여유 현금이 있을때 한정된 조항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국은 계약 조항보다 Reputation에 기반

우리는 ‘이런이런 잘못을 하면 이렇게 보상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지만, 실리콘밸리는 관계와 reputation에 기반한 계약 체계를 갖고 있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VC-스타트업’ 간 역학관계가 계속 변합니다. 상환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행사해서 대표에게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VC가 있다면 어떤 스타트업도 그들에게서 투자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사회나 투자자에게 거짓말을 한 창업자가 있다면 다시 창업했을 때 VC 투자를 받기 어려울 겁니다. 위워크 창업자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이는 희소가치에 따른 것이지요. 투자자든 창업자든 시장 논리로 선택되는 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고 잘 안됐을 때의 책임을 일일이 명기하는 것은 파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길게 보면 한국도 그렇게 변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edemption rights: 회사로 하여금 투자금을 상환하게 하여 원금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

Upside potential을 키우는 방향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
개인의 윤리나 선의가 아닌 투자자와 창업자, 직원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시스템에서 신뢰가 생기도록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downside risk를 막는 것보다는 upside potential을 키우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벤처 창업/투자의 본질에 더 가까우므로 그에 합당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미국 같은 동일 라운드 단일 계약서 체계로 변화함으로써 투자자 수가 늘어날 때 회사 의사결정을 원활하게 하고 VC로 하여금 더 큰 판돈을 걸 동기를 부여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스톡옵션은 창업자와 임직원 간의 이해관계에 해당하는데, 대표가 선심 쓰듯 주는 게 아니라 입사 시점부터 compensation package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VC도 스톡옵션 행사가격과 부여주식수에 지금보다 더 전향적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투자자를 속이고 싶은 창업자라면 풋옵션이 있어도 속일 것이고, 그렇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발본색원하겠다는 사고방식(risk 줄이기)보다는 창업자가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부분 미국 스타트업이 Delaware(DE) 주에 설립되는데요, DE 회사법 자체가 주주 동의가 필요한 사항은 최소한으로 하고 경영상 의사결정은 이사회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이 무엇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관례로 이사회에 보고 또는 승인받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대표이사 연봉, Director 이상의 채용, 큰 금액의 예산 집행 등 상식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은 정기 이사회에서 의논하거나 서면 동의를 받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모든 투자자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투자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생기게 되는데, 이 또한 판돈을 더 많이 넣은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갖는다는 자본주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투자와 거버넌스, 무엇이 다른지, 글로벌 투자 유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오늘 로스규이의 주인공 김범수 파트너, 곰디🐻‍❄️ 김성훈 변호사, 그리고 글로벌 투자를 경험한 창업가들이 함께하는 7월 3일 포럼에 초대합니다. 크로스보더 창업부터 투자까지 직접 경험한 연사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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