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헤바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저는 오래 전부터 작가가 꿈이라는 이야기를 해왔었는데요.

최근에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의 법률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면서, 감사하게도 창작자와 콘텐츠 기업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영감에 설레고, 영감을 풀어내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제 안의 세계를 글로 잘 표현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님들께서 많이 물어보신 질문에 관하여 Q&A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입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공모전에 여러 번 나갔지만, 아직 당선된 적이 없는데요. 이번 시나리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쓴다고 생각하니 걱정되는 게 많은데요. 실화에서 악역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이 항의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광해>, <명량>, <남한산성>, <야인시대>,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들> 등 역사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가 사랑을 많이 받아왔죠.

하지만 오늘 사연의 주인공분께서 걱정하신 것처럼, 실화 기반 영화가 실존 인물의 명예 훼손, 인격권 침해한다는 이유로 고소 고발을 당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관계자들이 <실미도>, <그때 그 사람들>, <명량>, 등에서 악역으로 묘사된 등장인물 또는 그 후손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이란 뭘까요?

시나리오 작가로서 명예훼손을 걱정한다면, 우선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1.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있다.

2.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허위 사실의 경우에만 성립한다.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 가능

흔히 실제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 게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데 충분한 경우 명예 훼손이 성립할 수 있어요. 사실이든 아니든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어요.

영화 <실미도> 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훈련병들을 사형수 출신 용공주의자로 보이게 하여 망인과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명예훼손 소송을 냈었죠. 즉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극 중에서 악역으로 묘사된 사람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면 명예훼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허구의 사실에만

다만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경우만 처벌할 수 있어요.

사실 적시 명예훼손, 폐지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제사회에서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나라가 몇 개 없다는 사실인데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회적 약자의 발언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요.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었고요. 로식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허구의 사실에서는 어떨까

그렇다면 사실 재현이 아닌 허구의 사실을 창작할 때는 어떨까요?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행위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형법에서는 '위법성 조각 사유'라고 불러요.

위법성 조각 사유가 뭐야?

단어가 조금 어려운데요. 위법성 조각 사유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행위의 '위법성'을 '물리치는' 사유를 의미해요. 겉으로 보기엔 범죄처럼 보이는 행동이더라도, 그 마땅한 사정이 있었다면 범죄로서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정당방위도 위법성 조각 사유

우리가 흔히 "이건 정당방위야!"라고 이야기하는 정당방위도, 형법 제21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해요. 예를 들어, 경찰관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는 등 불법 체포를 하는 경우,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을 손으로 미는 등의 폭력행위가 발생할 수 있어요. 판례는 이런 폭력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봤어요.* 불법 체포에 반항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불법 체포에 순순히 끌려갈 필요는 없다는 거죠.

*대법원 2000. 7. 4. 선고 99도4341 판결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사유는 특별해

명예훼손죄에서는 명예훼손에 관한 특별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하고 있어요.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대체 어떤 상황일 때 '너는 그럴만 했어! 범죄 아니야!'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요?

1.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

2. 행위자가 적시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결국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중요

허구나 각색을 더한다면, 그러한 묘사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해질 텐데요.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조사 확인하지 않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 본인 또는 관련자를 직접 조사할 수 있었는지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미도 사건에서는 이 사건 영화 제작 이전에 존재하던 실미도 사건에 관한 국회 회의록, 언론보도, 고위공직자의 진술 등 공적인 자료에는 훈련병들의 신분에 관해 ‘공군 관리하에 수용된 특수범 내지 죄수들’, ‘군 특수범’, ‘사형수나 무기수로 극형에 처해 복역하고 있던 죄수들’, ‘사형수 출신의 부대원들’, ‘범법자, 깡패들’이라고 되어 있었다는 점이 진실로 믿을 만한 이유로 인정되었고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자료들 이외에 다른 사실 확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이는 점, 피고들로서는 이 사건 망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유족인 원고들의 진술을 쉽게 청취할 수도 없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이에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제작한다면, 1) 내용의 진실 여부 조사 및 고증 2) 당사자 본인 또는 관련자 조사가 가능한지는 반드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상업적 영화의 관객도 허구가 더해진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법원은 상업영화를 접하는 일반 관객으로서도 영화의 모든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 사이의 긴장 관계를 인식·유지하면서 영화를 관람할 것인 점도 그 판단에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최근 영화에서 1) 영화 시작 전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 영화의 재미를 위하여 각색을 더했다는 점을 분명히 고지하고 있고, 2)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것도 관객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떠올리고, 흥행하기도 어렵지만, 작품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제3 자가 상처를 입는 일을 막기 위한 배려와 노력도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세상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모든 분들 아래 3가지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사실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2. 창작을 하기 전에 진실을 잘 확인하자.

3. 관객들이 시나리오가 사실이 재현이 아니라, 창작임을 알게 하자.

요새 헤바 주위에서도 유튜브, 인스타툰, 인스타 매거진 등 콘텐츠를 열심히 만드시는 1인 크리에이터 분들이 많은데요. 흥미로운 콘텐츠 스타트업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고요.

이러한 법적, 창작적 고민들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하시다면,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창작자 및 콘텐츠 기업을 위한 법률 상담 서비스를 활용해보시기 바라요.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 기업 모두 지원 가능하고, 경기도인이 아니어도 지원하실 수 있답니다! 저작권, IP뿐만 아니라 인사노무, 조세, 기업법무까지 다양한 법무에 관하여 도움을 받으실 수 있어요. 올해에는 법무법인 미션 변호사들이 직접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 로스규이의 필진들도 실제로 줌으로 만날 수 있어요.

여러분의 창의적인 여정이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